2025년 3월 26일 오후 9시 15분
月火水木金土日
‘글로벌 미술 언어'라는 난제
한국 현대 미술, 일명 ‘K-아트’는 최근 글로벌 아트신에서 그 가능성을 인정받고 있다. 파리 피노 컬렉션 김수자, 헤이워드 양혜규, 크롬웰 플레이스 서용선 등 중견・원로 작가는 물론 테이트 이미래, 런던현대미술관(ICA) 정금형, 베를린 에스더 쉬퍼 전현선 등 30~40대 젊은 작가의 활동이 돋보인다는 점에서 고무적이다.
그러나세계로 나서는 여정은 그리 단순하지 않다. 주요 비엔날레에 참가하거나 명망 있는 미술관에 작품을 거는 것만으로 잔칫집 분위기기가 되던 시절은 지났다. 지난해 런던에서 열린 한국 현대미술의 대표 주자 양혜규의 전시와 테이트 모던에 전시한 작가로는 역대 최연소인 이미래의 전시는 영국 신문<가디언>으로부터 각각 별 1개와 2개를 받았다. “방대하고 복잡하지만 감동이 없다",”당연한 사실을 반복할 뿐이다” 등의 평가와 함께 . 물론 혹평과 달리 호평을 내린 몇몇 영국 매체도 있었고, 국내언론 또한 “한국적 특수성과 세계적 보편성을 결합하려는 시도”라며 긍정적 평가를 내렸다. 이 온도차를 극복하려면 혹평의 의미 또한 가늠하며 ‘시도'의 다음 단계를 고민해야 한다. 특수성과 보편성을 결합하려는 시도는 어떻게 성공적으로 안착할 수 있을까?
우리는 오랫동안 ‘글로벌'이라는 단어를 서구와 동일시해왔다. 현대미술 또한 우리가 배워야 하는 것에 가까웠다. 서구에서 공부하거나 거주하는 한국인 작가들은 그곳의 미술 언어를 자연스레 익혀 상대적으로 빠르게 서구 미술계에 진입할 수 있었다. 그들 스스로 이룩한 성과는 아이러니하게도 한국미술의 국제적 위상을 높여 국내 미술계의 자부심을 높이는 데 기여해왔다. 그런 한편 주로 국내에서 정체성을 확립한 후 해외로 진출한 작가들은 서구에서 보기 어려운 참신한 시각을 제시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여성 국극을 주제로 작업하는 정은영은 한국의 전통과 젠더 문제를 결합함으로써 베니스 비엔날레를 비롯해 다양한 국제 무대에서 철학적 깊이와 표현력을 인정받았다. 흥미롭게도 한국의 구체적 문화와 역사에 관심을 갖게 하는 것은 오히려 이런 작품들이다. 우리는 여기서 ‘글로벌 미술 언어'에 관한 힌트를 얻을 수 있다.
글로벌(global)은 ‘인터내셔널(international)’과는 구분된다. 후자가 서로 다른 국가 간 상호작용에 주목한다면, 전자는 국가 간 경계가 사라진 모습이다. 문화비평가 마샬 맥루한이 제시한 ‘지구촌 (global village)’의 의미에 가깝다. 승인받아 관문을 뚫고 중심에 진입하는 것이 아니라 경계를 초월해 교류하는 상태다. 여기서는 내가 서 있는 곳이 바로 중심이 될 수 있다. 그럼에도 우리는 아직 서구의 시선에 미술을 가두고 인정을 갈구한다. 섣부른 인정 욕구가 결핍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은 슬프지만, 결핍으로 정당성을 만들 수는 없다.
현대미술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작가의 시선과 독창적 해석이다. 경계가 사라진 세계에서 표류하지 않으려면 과거 기준에 의존하는 대신 자신의 좌표를 먼저 확인해야 한다. 국가나 기관이 만든 ‘한국 미술'의 이미지는 공허하다. 예술가 개인이 자신의 좌표로부터 또렷한 시선을 드러내고 , 이것이 확장되어 국제적 담론과 연결될 때 비로소 ‘경계를 초월한 미술 언어'가 탄생한다. 그 과정에서 한국 작가의 독창적 언어를 강화할 수 있는 비평적 노력은 물론 국제 행사의 기획력 강화, 우리의 정체성을 바탕으로 한 예술 교육과 실험 또한 필요할 테다.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정치적’이라는 유명한 문장처럼, 오늘날에는 가장 개인적인 언어가 가장 보편적 미술 언어가 된다. 글로벌이라는 단어는 바깥을 갈망하는 시선을 돌려 자기 내부를 깊이 들여다보는 태도로부터 완성된다.
김지연 미술비평가. 2024 조선일보 신춘문예 미술평론 부문에 당선되었다. 책 <등을 쓰다듬는 사람>,<마리나의 눈>등을 썼다.
한국 현대 미술, 일명 ‘K-아트’는 최근 글로벌 아트신에서 그 가능성을 인정받고 있다. 파리 피노 컬렉션 김수자, 헤이워드 양혜규, 크롬웰 플레이스 서용선 등 중견・원로 작가는 물론 테이트 이미래, 런던현대미술관(ICA) 정금형, 베를린 에스더 쉬퍼 전현선 등 30~40대 젊은 작가의 활동이 돋보인다는 점에서 고무적이다.
그러나세계로 나서는 여정은 그리 단순하지 않다. 주요 비엔날레에 참가하거나 명망 있는 미술관에 작품을 거는 것만으로 잔칫집 분위기기가 되던 시절은 지났다. 지난해 런던에서 열린 한국 현대미술의 대표 주자 양혜규의 전시와 테이트 모던에 전시한 작가로는 역대 최연소인 이미래의 전시는 영국 신문<가디언>으로부터 각각 별 1개와 2개를 받았다. “방대하고 복잡하지만 감동이 없다",”당연한 사실을 반복할 뿐이다” 등의 평가와 함께 . 물론 혹평과 달리 호평을 내린 몇몇 영국 매체도 있었고, 국내언론 또한 “한국적 특수성과 세계적 보편성을 결합하려는 시도”라며 긍정적 평가를 내렸다. 이 온도차를 극복하려면 혹평의 의미 또한 가늠하며 ‘시도'의 다음 단계를 고민해야 한다. 특수성과 보편성을 결합하려는 시도는 어떻게 성공적으로 안착할 수 있을까?
우리는 오랫동안 ‘글로벌'이라는 단어를 서구와 동일시해왔다. 현대미술 또한 우리가 배워야 하는 것에 가까웠다. 서구에서 공부하거나 거주하는 한국인 작가들은 그곳의 미술 언어를 자연스레 익혀 상대적으로 빠르게 서구 미술계에 진입할 수 있었다. 그들 스스로 이룩한 성과는 아이러니하게도 한국미술의 국제적 위상을 높여 국내 미술계의 자부심을 높이는 데 기여해왔다. 그런 한편 주로 국내에서 정체성을 확립한 후 해외로 진출한 작가들은 서구에서 보기 어려운 참신한 시각을 제시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여성 국극을 주제로 작업하는 정은영은 한국의 전통과 젠더 문제를 결합함으로써 베니스 비엔날레를 비롯해 다양한 국제 무대에서 철학적 깊이와 표현력을 인정받았다. 흥미롭게도 한국의 구체적 문화와 역사에 관심을 갖게 하는 것은 오히려 이런 작품들이다. 우리는 여기서 ‘글로벌 미술 언어'에 관한 힌트를 얻을 수 있다.
글로벌(global)은 ‘인터내셔널(international)’과는 구분된다. 후자가 서로 다른 국가 간 상호작용에 주목한다면, 전자는 국가 간 경계가 사라진 모습이다. 문화비평가 마샬 맥루한이 제시한 ‘지구촌 (global village)’의 의미에 가깝다. 승인받아 관문을 뚫고 중심에 진입하는 것이 아니라 경계를 초월해 교류하는 상태다. 여기서는 내가 서 있는 곳이 바로 중심이 될 수 있다. 그럼에도 우리는 아직 서구의 시선에 미술을 가두고 인정을 갈구한다. 섣부른 인정 욕구가 결핍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은 슬프지만, 결핍으로 정당성을 만들 수는 없다.
현대미술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작가의 시선과 독창적 해석이다. 경계가 사라진 세계에서 표류하지 않으려면 과거 기준에 의존하는 대신 자신의 좌표를 먼저 확인해야 한다. 국가나 기관이 만든 ‘한국 미술'의 이미지는 공허하다. 예술가 개인이 자신의 좌표로부터 또렷한 시선을 드러내고 , 이것이 확장되어 국제적 담론과 연결될 때 비로소 ‘경계를 초월한 미술 언어'가 탄생한다. 그 과정에서 한국 작가의 독창적 언어를 강화할 수 있는 비평적 노력은 물론 국제 행사의 기획력 강화, 우리의 정체성을 바탕으로 한 예술 교육과 실험 또한 필요할 테다.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정치적’이라는 유명한 문장처럼, 오늘날에는 가장 개인적인 언어가 가장 보편적 미술 언어가 된다. 글로벌이라는 단어는 바깥을 갈망하는 시선을 돌려 자기 내부를 깊이 들여다보는 태도로부터 완성된다.
김지연 미술비평가. 2024 조선일보 신춘문예 미술평론 부문에 당선되었다. 책 <등을 쓰다듬는 사람>,<마리나의 눈>등을 썼다.
2025년 3월 22일 오후 10시 22분
月火水木金土日
The Kybalion is organized according to seven basic principles, which, it says, form the basis of occult philosophy:
1. Mentalism. “THE ALL IS MIND; the Universe is mental.”
2. Correspondence. “As above, so below; as below, so above.”
3. Vibration. “Nothing rests; everything moves; everything vibrates.”
4. polarity. “Everything is Dual; everything has poles; everything has its pair of opposites.”
5. Rhythm. “Everything flows, out and in; everything has its tides; all things rise and fall.”
6. Cause and Effect. “Every Cause has its Effects; every Effect has its Cause; everything happens according to Law.”
7. Gender. “Gender is in everything; everything has its Masculine and Feminine Principles; Gender manifests on all planes.”
In a 2009 blog posting, Tarot scholar Mary K. Greer suggests a plausible source for The Kybalion. In 1885, Anna Kingsford, an Englishwoman who founded an organization called the Hermetic Society, published a book titled The Virgin of the World of Hermes Mercurius Trismegistus, which contained an adaptation of the Hermetic texts. As Greer points out, this book, especially its introduction, written by Kingsford’s associate Edward Maitland, offers parallels for The Kybalion’s sven principles:
1. Mentalism. Maitland asserts that consciousness is “the indispensable condition of existence” (emphasis Maitland’s). Matter is itself merely “a mode of consciousness.”
2. Correspondence. Maitland writes: “From the oneness of original Being comes, as a corollary, the law of correspondence between all planes, or spheres, of existence, in virtue of which the macrocosm is as the microcosm, the universal as the indivisual, the worlds as man, and man as God.”
3. Vibration. The Kybalion formulates this principle thus: “Nothing rests; everything moves; everything vibrates.” This idea echoes a passage in one of the Hermetic texts(10): “There is nothing immutable, nothing stable, nothing unchanging in nature, either in the heavens or the earth.”
4. Polarity. Maitland writes: “All being modes of the One, no inherent antagonism, or essential difference, is possible...Total unconsciousness is...not-being and bears to consciousness the relation of darkness to light, the letter alone of the two being, however reduced, positive entity, and darkness being non-entity.”
5. Rhythm. The Corpus Hermeticum 14 reads: “Order maintains the fabric of things established by Destiny and Necessity. For all this is an everlasting sequence without beginning or end...It rises and falls alternately, and as time rolls onward, that which has disappered, again rises uppermost.”
6. Cause and Effect. Maitland refers to “that inexorable law of cause and effect in things moral, in virtue of which man’s nature and conditions in the future are the result of the tendencies voluntarily encouraged by him in the past and present.”
7. Gender. Maitland writes: “So far from repudiating the relations of the sexes, [Hermetic doctrine] exalts them as symbolising the loftiest divine mysteries, and enjoins their exercise as a duty, the fulfilment of which, in some at least of his incarnations, is essential to the full perfectionment and initiation of the indivisual.”
Three Initiates (2018). The Kabalion. A TarcherPerigee Book.
1. Mentalism. “THE ALL IS MIND; the Universe is mental.”
2. Correspondence. “As above, so below; as below, so above.”
3. Vibration. “Nothing rests; everything moves; everything vibrates.”
4. polarity. “Everything is Dual; everything has poles; everything has its pair of opposites.”
5. Rhythm. “Everything flows, out and in; everything has its tides; all things rise and fall.”
6. Cause and Effect. “Every Cause has its Effects; every Effect has its Cause; everything happens according to Law.”
7. Gender. “Gender is in everything; everything has its Masculine and Feminine Principles; Gender manifests on all planes.”
In a 2009 blog posting, Tarot scholar Mary K. Greer suggests a plausible source for The Kybalion. In 1885, Anna Kingsford, an Englishwoman who founded an organization called the Hermetic Society, published a book titled The Virgin of the World of Hermes Mercurius Trismegistus, which contained an adaptation of the Hermetic texts. As Greer points out, this book, especially its introduction, written by Kingsford’s associate Edward Maitland, offers parallels for The Kybalion’s sven principles:
1. Mentalism. Maitland asserts that consciousness is “the indispensable condition of existence” (emphasis Maitland’s). Matter is itself merely “a mode of consciousness.”
2. Correspondence. Maitland writes: “From the oneness of original Being comes, as a corollary, the law of correspondence between all planes, or spheres, of existence, in virtue of which the macrocosm is as the microcosm, the universal as the indivisual, the worlds as man, and man as God.”
3. Vibration. The Kybalion formulates this principle thus: “Nothing rests; everything moves; everything vibrates.” This idea echoes a passage in one of the Hermetic texts(10): “There is nothing immutable, nothing stable, nothing unchanging in nature, either in the heavens or the earth.”
4. Polarity. Maitland writes: “All being modes of the One, no inherent antagonism, or essential difference, is possible...Total unconsciousness is...not-being and bears to consciousness the relation of darkness to light, the letter alone of the two being, however reduced, positive entity, and darkness being non-entity.”
5. Rhythm. The Corpus Hermeticum 14 reads: “Order maintains the fabric of things established by Destiny and Necessity. For all this is an everlasting sequence without beginning or end...It rises and falls alternately, and as time rolls onward, that which has disappered, again rises uppermost.”
6. Cause and Effect. Maitland refers to “that inexorable law of cause and effect in things moral, in virtue of which man’s nature and conditions in the future are the result of the tendencies voluntarily encouraged by him in the past and present.”
7. Gender. Maitland writes: “So far from repudiating the relations of the sexes, [Hermetic doctrine] exalts them as symbolising the loftiest divine mysteries, and enjoins their exercise as a duty, the fulfilment of which, in some at least of his incarnations, is essential to the full perfectionment and initiation of the indivisual.”
Three Initiates (2018). The Kabalion. A TarcherPerigee Book.
2025년 3월 17일 오후 4시 36분
月火水木金土日
5. 사람은 자신이 생각한 대로, 오직 그대로 존재하게 됩니다.
사람이 성취하는 모든 것과 성취하지 못하는 모든 것은, 자신의 생각의 직접적인 결과입니다. 균형을 잃으면 완전한 파멸로 이어지는 우주의 완벽한 질서 속에서 개인의 책임은 절대적입니다. 우주의 질서는 그 자체로 완전하기 때문에 궤도에서 이탈하는 결정을 내린 즉시, 그 결과의 영향은 개인이 받습니다.
사람이 가진 나약함, 강인함, 순수함과 불순함은 모두 그 자신의 것입니다. 자기 스스로 만든 것이며 다른 누구의 의해서 초래된 것이 아닙니다. ‘누구로부터다',’그런 상황 때문에',’그 일로부터'라는 생각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처한 환경은 고스란히 자신의 생각의 결과 값이며 고뇌와 고통, 행복 역시 자기 자신이 말들어 낸 것입니다.
감정이 오직 자신의 것이듯 상황 역시 자신이 만들어 낸 오직 나의 것입니다. 사람은 ‘자신이 생각한 대로 존재하게 되는 것'입니다. 생각이 바로 자기 자신입니다. 아무리 강하고, 많이 가진 사람이라도 약하고 부족한 누군가가 도움 받기를 바랄 때라야 도울 수 있습니다. 또한 도움을 받고 있는 사람은 스스로 강해져야 합니다. 그는 부러워하는 누군가가 가진 그 강인함을 스스로 노력해 개발해야 합니다. 나 외에는 그 누구도 내 상태를 바꿀 수 없기 때문입니다.
“착취하려는 단 한 사람의 독재자 때문에 수많은 사람이 노예처럼 됐으니 그를 증오해야 한다.”라는 주장이 있습니다. 그에 맞서 “노예의 근성을 가진 많은 사람들 때문에 한 사람의 독재자가 생겼으니 그들이야말로 문제다.”라는 의견도 있습니다.
진실은 이렇습니다. 착취하는 쪽과 착취 당하는 쪽은 무지 속에서 협력자입니다. 겉으로는 서로를 괴롭히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스스로를 괴롭히고 있는 것입니다.
통찰력 깊은 사람의 완전한 지식은 억압받는 자의 약함과 억압자의 잘못 적용된 힘에서 법칙이 작용하는 것을 인식합니다. 완전한 사랑은 두 상태가 수반하는 고통을 보고 어느 쪽도 비난하지 않습니다. 완전한 연민은 억압자와 피업압자 모두를 포용합니다.
나약함을 극복하고 모든 이기적인 생각을 버린 사람은 남을 억압하거나 억압받지 않습니다. 사람은 생각을 고양시켜야만 성장하고 정복하고 성취할 수 있습니다. 그러할 때 그들은 온전히 자유롭습니다. 생각의 차원을 높이기를 거부하는 사람은 나약하고 비참하고 비굴한 존재로 남아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무언가를 성취하려면 아무리 세속적인 일이라도 이기적인 욕망과 쾌락, 동물적인 본능 같은 것들의 일부 희생은 불가피합니다. 쾌락을 제일 먼저 생각하는 사람은 명확한 사고로 생각하지 못하고 체계적인 계획을 세우지 못합니다.
그는 잠재된 재능을 발견하고 개발하지 못해 어떤 사업에서든 실패할 것입니다. 자신의 생각을 통제하기 시작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는 일을 통제하고 진지한 책임을 맡을 수 있는 위치에 있지 않습니다. 그는 독립적으로 행동하거나 스스로 서 있을 수 없습니다. 그는 자신이 선택한 생각의 수준에 맞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
희생 없이는 바라전도 성취도 있을 수 없습니다. 성공의 크기는 사람이 이전의 생각을 버리고 자신이 계획한 일에 몰두하는 동시에 자신감과 옳은 방향의 생각을 해나갔는가로 좌우될 것입니다. 목표에 대한 열망이 얼마나 강력한가, 얼마나 용기를 냈는가, 얼마나 올바르게 추구했는가에 따라 성취한 업적의 존속과 지속이 결정됩니다.
겉으로 보기에 세상은 탐욕스럽고 부정직하며 사악한 자들 편이라고 느껴질 수 있지만 사실은 그와 반대입니다. 우주의 에너지와 힘은 정직하고 덕이 있는 사람들의 편입니다. 역사의 모든 위대한 스승들이 다양한 형태로 이 진실을 알려왔습니다. 이것을 스스로 깨우치고 증명해 보려면 생각을 바꿔 나가면 됩니다. 진리와 법칙에 따라 생각을 변화시키면 모든 것에 전해져 내 앞에 드러날 것입니다. 그것으로 사람은 이 진리가 진실임을 스스로 알게 될 것입니다.
꾸준하고 끈질기게 노력하십시오.
벗어나지 마십시오.
계속하십시오.
당신은 보게 될 것입니다.
지적인 목표의 성취는, 지식의 탐구에 깊이 몰두하고 추구하며 삶과 자연에서 이치를 알기 위해 헌신한 생각의 결과입니다. 이런 업적을 때때로 허영심과 자만심으로 연결 짓지만 실상은 관련 없는 사실입니다. 지적인 성취는 끊임없는 노력과 순수한 마음에서 나온 자연스러운 결과물일 뿐입니다.
이기적인 욕망을 버리고 끊임없이 아름다운 생각만들 가지려고 노력하는 사람은 태양이 정점에 도달하고 달이 차는 것처럼 반드시 지혜롭고 고귀한 성품을 갖게 되며 영향력과 축복의 자리에 오를 것입니다.
어떤 종류의 업적이든 성취는 노력에 대한 면류관이며 생각이 이뤄낸 왕관입니다. 자제력과 결단력, 순수함과 의로움, 잘 다스려진 생각으로 인간의 지위는 세워집니다. 방탕함과 나태함, 불결함과 의롭지 못한 생각으로 인간의 지위는 아래로 떨어집니다.
사람은 세상에서 높은 성공을 거두고 내면의 통찰력에서도 높은 경지에 오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오만하고 이기적이며 부패한 생각이 자신을 지배하도록 허용하는 순간, 다시 나약하고 비참한 상태로 떨어질 수 있습니다. 따라서 올바른 생각으로 얻는 모든 승리는 깨어서 생각을 살필 때 유지할 수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성공이 확실해지면 느슨해지고 노력을 멈춰 빠르게 실패로 돌아갑니다. 사업에 있어서나 내적으로도 모든 성취는 분명하게 붙잡은 생각의 결과이며 같은 법칙이 적용될 뿐 아니라 언제나 같은 방법으로 반복해서 이뤄집니다. 작은 것을 이루려는 사람은 작은 희생을 치루면 됩니다. 많은 것을 성취하려는 사람은 많은 것을 희생해야 합니다. 크게 성취하려는 사람은 크게 희생해야 하는 것입니다.
제임스 앨런(1903) 스스로 창조한 ‘나' (As a Man Thinketh). 스노우폭스북스
사람이 성취하는 모든 것과 성취하지 못하는 모든 것은, 자신의 생각의 직접적인 결과입니다. 균형을 잃으면 완전한 파멸로 이어지는 우주의 완벽한 질서 속에서 개인의 책임은 절대적입니다. 우주의 질서는 그 자체로 완전하기 때문에 궤도에서 이탈하는 결정을 내린 즉시, 그 결과의 영향은 개인이 받습니다.
사람이 가진 나약함, 강인함, 순수함과 불순함은 모두 그 자신의 것입니다. 자기 스스로 만든 것이며 다른 누구의 의해서 초래된 것이 아닙니다. ‘누구로부터다',’그런 상황 때문에',’그 일로부터'라는 생각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처한 환경은 고스란히 자신의 생각의 결과 값이며 고뇌와 고통, 행복 역시 자기 자신이 말들어 낸 것입니다.
감정이 오직 자신의 것이듯 상황 역시 자신이 만들어 낸 오직 나의 것입니다. 사람은 ‘자신이 생각한 대로 존재하게 되는 것'입니다. 생각이 바로 자기 자신입니다. 아무리 강하고, 많이 가진 사람이라도 약하고 부족한 누군가가 도움 받기를 바랄 때라야 도울 수 있습니다. 또한 도움을 받고 있는 사람은 스스로 강해져야 합니다. 그는 부러워하는 누군가가 가진 그 강인함을 스스로 노력해 개발해야 합니다. 나 외에는 그 누구도 내 상태를 바꿀 수 없기 때문입니다.
“착취하려는 단 한 사람의 독재자 때문에 수많은 사람이 노예처럼 됐으니 그를 증오해야 한다.”라는 주장이 있습니다. 그에 맞서 “노예의 근성을 가진 많은 사람들 때문에 한 사람의 독재자가 생겼으니 그들이야말로 문제다.”라는 의견도 있습니다.
진실은 이렇습니다. 착취하는 쪽과 착취 당하는 쪽은 무지 속에서 협력자입니다. 겉으로는 서로를 괴롭히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스스로를 괴롭히고 있는 것입니다.
통찰력 깊은 사람의 완전한 지식은 억압받는 자의 약함과 억압자의 잘못 적용된 힘에서 법칙이 작용하는 것을 인식합니다. 완전한 사랑은 두 상태가 수반하는 고통을 보고 어느 쪽도 비난하지 않습니다. 완전한 연민은 억압자와 피업압자 모두를 포용합니다.
나약함을 극복하고 모든 이기적인 생각을 버린 사람은 남을 억압하거나 억압받지 않습니다. 사람은 생각을 고양시켜야만 성장하고 정복하고 성취할 수 있습니다. 그러할 때 그들은 온전히 자유롭습니다. 생각의 차원을 높이기를 거부하는 사람은 나약하고 비참하고 비굴한 존재로 남아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무언가를 성취하려면 아무리 세속적인 일이라도 이기적인 욕망과 쾌락, 동물적인 본능 같은 것들의 일부 희생은 불가피합니다. 쾌락을 제일 먼저 생각하는 사람은 명확한 사고로 생각하지 못하고 체계적인 계획을 세우지 못합니다.
그는 잠재된 재능을 발견하고 개발하지 못해 어떤 사업에서든 실패할 것입니다. 자신의 생각을 통제하기 시작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는 일을 통제하고 진지한 책임을 맡을 수 있는 위치에 있지 않습니다. 그는 독립적으로 행동하거나 스스로 서 있을 수 없습니다. 그는 자신이 선택한 생각의 수준에 맞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
희생 없이는 바라전도 성취도 있을 수 없습니다. 성공의 크기는 사람이 이전의 생각을 버리고 자신이 계획한 일에 몰두하는 동시에 자신감과 옳은 방향의 생각을 해나갔는가로 좌우될 것입니다. 목표에 대한 열망이 얼마나 강력한가, 얼마나 용기를 냈는가, 얼마나 올바르게 추구했는가에 따라 성취한 업적의 존속과 지속이 결정됩니다.
겉으로 보기에 세상은 탐욕스럽고 부정직하며 사악한 자들 편이라고 느껴질 수 있지만 사실은 그와 반대입니다. 우주의 에너지와 힘은 정직하고 덕이 있는 사람들의 편입니다. 역사의 모든 위대한 스승들이 다양한 형태로 이 진실을 알려왔습니다. 이것을 스스로 깨우치고 증명해 보려면 생각을 바꿔 나가면 됩니다. 진리와 법칙에 따라 생각을 변화시키면 모든 것에 전해져 내 앞에 드러날 것입니다. 그것으로 사람은 이 진리가 진실임을 스스로 알게 될 것입니다.
꾸준하고 끈질기게 노력하십시오.
벗어나지 마십시오.
계속하십시오.
당신은 보게 될 것입니다.
지적인 목표의 성취는, 지식의 탐구에 깊이 몰두하고 추구하며 삶과 자연에서 이치를 알기 위해 헌신한 생각의 결과입니다. 이런 업적을 때때로 허영심과 자만심으로 연결 짓지만 실상은 관련 없는 사실입니다. 지적인 성취는 끊임없는 노력과 순수한 마음에서 나온 자연스러운 결과물일 뿐입니다.
이기적인 욕망을 버리고 끊임없이 아름다운 생각만들 가지려고 노력하는 사람은 태양이 정점에 도달하고 달이 차는 것처럼 반드시 지혜롭고 고귀한 성품을 갖게 되며 영향력과 축복의 자리에 오를 것입니다.
어떤 종류의 업적이든 성취는 노력에 대한 면류관이며 생각이 이뤄낸 왕관입니다. 자제력과 결단력, 순수함과 의로움, 잘 다스려진 생각으로 인간의 지위는 세워집니다. 방탕함과 나태함, 불결함과 의롭지 못한 생각으로 인간의 지위는 아래로 떨어집니다.
사람은 세상에서 높은 성공을 거두고 내면의 통찰력에서도 높은 경지에 오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오만하고 이기적이며 부패한 생각이 자신을 지배하도록 허용하는 순간, 다시 나약하고 비참한 상태로 떨어질 수 있습니다. 따라서 올바른 생각으로 얻는 모든 승리는 깨어서 생각을 살필 때 유지할 수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성공이 확실해지면 느슨해지고 노력을 멈춰 빠르게 실패로 돌아갑니다. 사업에 있어서나 내적으로도 모든 성취는 분명하게 붙잡은 생각의 결과이며 같은 법칙이 적용될 뿐 아니라 언제나 같은 방법으로 반복해서 이뤄집니다. 작은 것을 이루려는 사람은 작은 희생을 치루면 됩니다. 많은 것을 성취하려는 사람은 많은 것을 희생해야 합니다. 크게 성취하려는 사람은 크게 희생해야 하는 것입니다.
제임스 앨런(1903) 스스로 창조한 ‘나' (As a Man Thinketh). 스노우폭스북스
2025년 3월 14일 오전 12시 16분
月火水木金土日
There are moment in our lives, there are moments in a day, when we see to see beyond the usual. Such are the moemnts of our greatest happiness. Such are the moemnts of our greatest wishdom. If one could but recall his vision by some sort of sign. It was in this hope that the arts were invented. Sign-posts on the way to what may be. Sign-posts toward greater knowledge.
Robert Henri (1923). The Art Spirit. Basic Books
0Robert Henri (1923). The Art Spirit. Basic Books
2025년 3월 12일 오후 12시 38분
月火水木金土日
1. OUT OF THIS WORLD
The spiritual man speaks to the natural man through the language of desire. The key to progress in life and the fulfillment of dreams lies in ready obedience to its voice. Unhesitating obedience to its voice is an immediate assumption of the wish fulfilled. To desire a state is to have it. As pascal has said, “You would not have sought me had you not already found me.” Man, by assuming the feeling of his wish fulfilled, and then living and acting on this conviction, alters the future in harmony with his assumption.
Assumptions awaken what they affirm. As soon as man assumes the feeling of his wish fulfilled, his four demensional self finds ways for the attainment of this end, discovers methods for its realization. I know of no clearer definition of the means by which we realize our desires than to experience in imagination what we would experience in the flesh were we to achieve our goal. This experience of the end wills thr means. With its larger outlook the four-dimensional self then constructs the means necessary to realize the accepted end.
Neville (1949). Out of this world (Thinking fourth-dimensionally). Goddard Publications.
The spiritual man speaks to the natural man through the language of desire. The key to progress in life and the fulfillment of dreams lies in ready obedience to its voice. Unhesitating obedience to its voice is an immediate assumption of the wish fulfilled. To desire a state is to have it. As pascal has said, “You would not have sought me had you not already found me.” Man, by assuming the feeling of his wish fulfilled, and then living and acting on this conviction, alters the future in harmony with his assumption.
Assumptions awaken what they affirm. As soon as man assumes the feeling of his wish fulfilled, his four demensional self finds ways for the attainment of this end, discovers methods for its realization. I know of no clearer definition of the means by which we realize our desires than to experience in imagination what we would experience in the flesh were we to achieve our goal. This experience of the end wills thr means. With its larger outlook the four-dimensional self then constructs the means necessary to realize the accepted end.
Neville (1949). Out of this world (Thinking fourth-dimensionally). Goddard Publications.
2025년 3월 11일 오후 1시 54분
月火水木金土日
1. 현대사회에서 개인이 처한 곤경
의식의 비판과 통제에서 벗어나 있는 이 광범위한 무의식의 영역 안에서, 우리는 온갖 영향과 심리적 전염에 노출된 채 무방비 상태로 서 있다. 위험에 직면하는 어느 경우나 마찬가지로, 심리적 전염에 맞설 때에도 우리를 공격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잘 알고 또 그 공격이 언제 어디서 어떤 식으로 일어날 것인지를 알 때에만 우리가 스스로를 지킬 수 있다. 자기지식은 사람이 자기 자신에 대해 알고 있는 개인적인 사실들을 말한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지식에 있어서는 이론은 거의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한다. 왜냐하면 어떤 이론이 보편적으로 유효하다고 목소리를 높일수록 그 이론이 개인적인 사실들을 공평하게 다룰 수 있는 능력은 그만큼 더 떨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경험에 근거한 이론이면 어떤 것이든 반드시 통계적이다. 다시 말하면, ‘이상적인 평균'을 공식화한 이론이라는 뜻이다. 그런데 이 ‘이상적인 평균'은 그 척도의 양쪽 끝에 있는 모든 예외들을 배제하고 그것들을 추상적인 평균으로 대체해 버린다. 그런데 이 추상적인 평균이 상당히 유효한 것으로 여겨지는 것이 문제이다. 현실 속에서는 그 평균이 반드시 있는 것은 아닌데도 말이다.
이런 사실에도 불구하고, 추상적인 평균은 이론에서 공격 불가능한 근본적인 사실로 통한다. 반면에 척도의 양쪽 끝에 있는 예외들은 엄연한 사실임에도 불구하고 최종 결과에는 전혀 나타나지 않는다. 이쪽의 예외들이 저쪽의 예외들을, 저쪽의 예외들이 이 쪽의 예외들을 상쇄해 버리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보자. 만일 내가 자갈밭의 돌들을 하나씩 주워 일일이 무게를 달고 그 평균이 145g이라는 것을 알았다면, 이 수치는 그 자갈들의 본질에 대해서 나에게 거의 아무것도 말해주지 못한다. 이 발견을 근거로 누군가가 첫 번째 시도에서 145g 짜리 자갈을 집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그는 크게 실망하고 말 것이다. 정말이지 그 사람이 아무리 오랜 시간을 찾아 헤맨다 해도 정확히 145g 나가는 자갈을 발견하지 못할 가능성도 있다.
통계적 방법은 이상적인 평균이라는 측면에선 사실들을 보여주지만, 경험적 현실에 대해서는 우리에게 아무런 그림도 제시하지 못한다. 통계적 방법은 현실의 논박 불가능한 어떤 측면을 반영하는 한편으로, 실제적인 진실을 왜곡할 수도 있다. 통계에 바탕을 둔 이론의 경우 특히 더 그러하다.
그러나 진정한 사실들이 특별한 점은 그 사실들의 개별적 특성에 있다. 더 노골적으로 말한다면, 현실의 진정한 그림은 그 규칙들의 예외들만으로 이뤄져 있으며 따라서 절대적인 현실은 불규칙성을 압도적으로 보인다고 말할 수 있다.
자기지식의 길잡이 역할을 할 이론에 대해 논할 때면 언제나 앞에서 말한 사항을 깊이 새겨야 한다. 이론적 가설에 근거한 자기지식은 절대로 없으며 또 있을 수도 없다. 그 이유는 자기지식의 대상이 한 사람의 개인이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하나의 상대적인 예외이자 하나의 비규칙적인 현상인 한 사람의 개인이 자기지식의 대상이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그 개인의 특성을 말해주는 것은 보편적이고 규칙적인 것이 아니라 독특한 것이다. 그 개인을 다른 사람과 똑같은 하나의 단위로 이해해서는 안 되고 유일하고 특별한 존재로 이해해야 한다. 최종적인 분석에서도 끝내 전모가 밝혀지지 않고 또한 다른 어떠한 것과도 비교될 수 없는 존재로 말이다.
칼 구스타프 융 (2013). 무엇이 개인을 이렇게 만드는가?. 도서출판 부글북스
의식의 비판과 통제에서 벗어나 있는 이 광범위한 무의식의 영역 안에서, 우리는 온갖 영향과 심리적 전염에 노출된 채 무방비 상태로 서 있다. 위험에 직면하는 어느 경우나 마찬가지로, 심리적 전염에 맞설 때에도 우리를 공격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잘 알고 또 그 공격이 언제 어디서 어떤 식으로 일어날 것인지를 알 때에만 우리가 스스로를 지킬 수 있다. 자기지식은 사람이 자기 자신에 대해 알고 있는 개인적인 사실들을 말한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지식에 있어서는 이론은 거의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한다. 왜냐하면 어떤 이론이 보편적으로 유효하다고 목소리를 높일수록 그 이론이 개인적인 사실들을 공평하게 다룰 수 있는 능력은 그만큼 더 떨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경험에 근거한 이론이면 어떤 것이든 반드시 통계적이다. 다시 말하면, ‘이상적인 평균'을 공식화한 이론이라는 뜻이다. 그런데 이 ‘이상적인 평균'은 그 척도의 양쪽 끝에 있는 모든 예외들을 배제하고 그것들을 추상적인 평균으로 대체해 버린다. 그런데 이 추상적인 평균이 상당히 유효한 것으로 여겨지는 것이 문제이다. 현실 속에서는 그 평균이 반드시 있는 것은 아닌데도 말이다.
이런 사실에도 불구하고, 추상적인 평균은 이론에서 공격 불가능한 근본적인 사실로 통한다. 반면에 척도의 양쪽 끝에 있는 예외들은 엄연한 사실임에도 불구하고 최종 결과에는 전혀 나타나지 않는다. 이쪽의 예외들이 저쪽의 예외들을, 저쪽의 예외들이 이 쪽의 예외들을 상쇄해 버리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보자. 만일 내가 자갈밭의 돌들을 하나씩 주워 일일이 무게를 달고 그 평균이 145g이라는 것을 알았다면, 이 수치는 그 자갈들의 본질에 대해서 나에게 거의 아무것도 말해주지 못한다. 이 발견을 근거로 누군가가 첫 번째 시도에서 145g 짜리 자갈을 집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그는 크게 실망하고 말 것이다. 정말이지 그 사람이 아무리 오랜 시간을 찾아 헤맨다 해도 정확히 145g 나가는 자갈을 발견하지 못할 가능성도 있다.
통계적 방법은 이상적인 평균이라는 측면에선 사실들을 보여주지만, 경험적 현실에 대해서는 우리에게 아무런 그림도 제시하지 못한다. 통계적 방법은 현실의 논박 불가능한 어떤 측면을 반영하는 한편으로, 실제적인 진실을 왜곡할 수도 있다. 통계에 바탕을 둔 이론의 경우 특히 더 그러하다.
그러나 진정한 사실들이 특별한 점은 그 사실들의 개별적 특성에 있다. 더 노골적으로 말한다면, 현실의 진정한 그림은 그 규칙들의 예외들만으로 이뤄져 있으며 따라서 절대적인 현실은 불규칙성을 압도적으로 보인다고 말할 수 있다.
자기지식의 길잡이 역할을 할 이론에 대해 논할 때면 언제나 앞에서 말한 사항을 깊이 새겨야 한다. 이론적 가설에 근거한 자기지식은 절대로 없으며 또 있을 수도 없다. 그 이유는 자기지식의 대상이 한 사람의 개인이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하나의 상대적인 예외이자 하나의 비규칙적인 현상인 한 사람의 개인이 자기지식의 대상이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그 개인의 특성을 말해주는 것은 보편적이고 규칙적인 것이 아니라 독특한 것이다. 그 개인을 다른 사람과 똑같은 하나의 단위로 이해해서는 안 되고 유일하고 특별한 존재로 이해해야 한다. 최종적인 분석에서도 끝내 전모가 밝혀지지 않고 또한 다른 어떠한 것과도 비교될 수 없는 존재로 말이다.
칼 구스타프 융 (2013). 무엇이 개인을 이렇게 만드는가?. 도서출판 부글북스
2025년 3월 9일 오전 12시 47분
月火水木金土日
무를 보는 방법 I : 유에서 무를 만들기
많은 사람들이 말하듯이, 인간이 가진 최고의 감각은 시각이다. 망막은 사실상 뇌의 일부로 간주된다. 확실히 이것은 가장 많이 연구된 인지 기관이다. 따라서 시각은 우리의 머릿속의 구멍에 대해 많은 것을 말해 줄 뿐만 아니라, 우리가 주위를 보는 방식, 또는 주위를 채우는 방식에 대해 많은 것을 말해 줄 것이다. 시지각을 깊이 살펴보는 것은 이 책의 범위를 넘지만, 눈과 뇌가 무에서 유를 만들어내는, 또한 유에서 무를 만들어내는 방식은 충분히 살펴볼 만하다.
아마 가장 낯익은 것은 우리의 코앞에 있는 정보를 지워버리는 능력이다. 그렇기 때문에 항상 우리의 시야에 어른거리는 우리의 코는 눈에 보이지 않는다. 눈 속의 혈관은 항상 우리의 시야를 가리지만, 우리에게는 이 혈관이 보이지 않는다. 망막이 휘어 있기 때문에 생기는 왜곡도 우리에게는 보이지 않고, 안구 속에 떠나니는 실 같은 부유물도 보이지 않으며, 다른 여러 생리적 방해물도 보이지 않는다.
뇌는 이런 것들이 핵심이 아니기 때문에 (눈에 보이는 세계를 의미있게 해석하는 데 필요하지 않기 때문에), 그리고 항상 거기에 그것이 있기 때문에 지워버린다. 항상 거기에 있는 데이터는 없는 것으로 간주된다. 다시 말해 무시된다. 낯익은 광경과 소리들, 시간과 공간, 공기와 중력, 숨과 건강이 그러하다.
뇌가 가장 잘하는 일은 불필요한 여분의 정보를 걸러내는 일이다. 걸러내는 메커니즘이 없으면, 뇌는 도저히 다 처리할 수 없는 감각 정보들로 넘쳐날 것이다. 따라서 외부에서 오는 대부분의 정보들이 의식에 전달되지 않고 버려진다.
(중간 생략)
한 가지 일에 대한 집중은 다른 모든 것들을 희미하게 만든다. 한 사람의 얼굴만 집중적으로 쳐다보면 그 방의 다른 모든 사람의 얼굴은 사라진다. 파티에서 한 사람의 목소리만 주의해서 들으면, 다른 모든 사람들의 말은 희미하게 번져서 소음이 된다. 한 문제에 집중하면 관계가 없는 우주의 다른 모든 것들이 현실에서 사라진다. 인지적 환영은 이러한 사라지는 메커니즘을 매우 확고한 것으로 만든다. 예를 들어 마주 보는 두 얼굴이 꽃병이 되기도 하고, 반대로 되기도 하는 그림을 보자. 어떤 이미지에 주의를 기울이는가에 따라 이 그림은 두가지로 보인다. 꽃병이 유(有)이면, 얼굴은 배경이다. 그림자가 유이면, 꽃병은 무(無)이다.
다시 말해 무를 보기가 그렇게 어려운 까닭은 우리가 주의를 기울이지 않을 때만 그것이 무가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무가 거기에 있다는 것을 알아낼 수 없다.
K.C 콜(2001). 우주의 구멍. 해냄출판사
많은 사람들이 말하듯이, 인간이 가진 최고의 감각은 시각이다. 망막은 사실상 뇌의 일부로 간주된다. 확실히 이것은 가장 많이 연구된 인지 기관이다. 따라서 시각은 우리의 머릿속의 구멍에 대해 많은 것을 말해 줄 뿐만 아니라, 우리가 주위를 보는 방식, 또는 주위를 채우는 방식에 대해 많은 것을 말해 줄 것이다. 시지각을 깊이 살펴보는 것은 이 책의 범위를 넘지만, 눈과 뇌가 무에서 유를 만들어내는, 또한 유에서 무를 만들어내는 방식은 충분히 살펴볼 만하다.
아마 가장 낯익은 것은 우리의 코앞에 있는 정보를 지워버리는 능력이다. 그렇기 때문에 항상 우리의 시야에 어른거리는 우리의 코는 눈에 보이지 않는다. 눈 속의 혈관은 항상 우리의 시야를 가리지만, 우리에게는 이 혈관이 보이지 않는다. 망막이 휘어 있기 때문에 생기는 왜곡도 우리에게는 보이지 않고, 안구 속에 떠나니는 실 같은 부유물도 보이지 않으며, 다른 여러 생리적 방해물도 보이지 않는다.
뇌는 이런 것들이 핵심이 아니기 때문에 (눈에 보이는 세계를 의미있게 해석하는 데 필요하지 않기 때문에), 그리고 항상 거기에 그것이 있기 때문에 지워버린다. 항상 거기에 있는 데이터는 없는 것으로 간주된다. 다시 말해 무시된다. 낯익은 광경과 소리들, 시간과 공간, 공기와 중력, 숨과 건강이 그러하다.
뇌가 가장 잘하는 일은 불필요한 여분의 정보를 걸러내는 일이다. 걸러내는 메커니즘이 없으면, 뇌는 도저히 다 처리할 수 없는 감각 정보들로 넘쳐날 것이다. 따라서 외부에서 오는 대부분의 정보들이 의식에 전달되지 않고 버려진다.
(중간 생략)
한 가지 일에 대한 집중은 다른 모든 것들을 희미하게 만든다. 한 사람의 얼굴만 집중적으로 쳐다보면 그 방의 다른 모든 사람의 얼굴은 사라진다. 파티에서 한 사람의 목소리만 주의해서 들으면, 다른 모든 사람들의 말은 희미하게 번져서 소음이 된다. 한 문제에 집중하면 관계가 없는 우주의 다른 모든 것들이 현실에서 사라진다. 인지적 환영은 이러한 사라지는 메커니즘을 매우 확고한 것으로 만든다. 예를 들어 마주 보는 두 얼굴이 꽃병이 되기도 하고, 반대로 되기도 하는 그림을 보자. 어떤 이미지에 주의를 기울이는가에 따라 이 그림은 두가지로 보인다. 꽃병이 유(有)이면, 얼굴은 배경이다. 그림자가 유이면, 꽃병은 무(無)이다.
다시 말해 무를 보기가 그렇게 어려운 까닭은 우리가 주의를 기울이지 않을 때만 그것이 무가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무가 거기에 있다는 것을 알아낼 수 없다.
K.C 콜(2001). 우주의 구멍. 해냄출판사
2025년 3월 3일 오후 11시 23분
月火水木金土日
객관적 실체가 없는 시간과 공간
반유물론자였던 버클리는 위의 사실을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하늘과 땅을 구성하는 모든 것, 한 마디로 이 세상에서 최강의 구조를 형성하고 있는 모든 개체들은 인간의 주관적인 마인드가 없다면 실체는 존재하지 않는다. 단지 인간의 인식 방법에 따라 현재 명명된 실체를 부여받았을 뿐이다. 내 눈앞에 있는 개체들은 실제로 인식하지 못하거나, 내 기억 속에 없거나, 타인의 인식 속에도 존재하지 않는다면 실제로 존재한다 해도 엄밀히 말하면 존재하는 게 아니다. 그렇지 않다면 어떤 영원한 정신 속에만 존재하는 게 틀림없다.
아인슈타인은 이러한 논리를 최대 한계점까지 끌고갔다. 그는 시간조차도 직관, 즉 사고나 증명 없이 사실을 받아들이는 인지 영역으로 형성된 것이며, 색깔・모양・크기 등의 개념과 마찬가지로 공간이나 시간 역시 우리의 인식 범위 안에서 정의되고 존재한다고 말했다. 즉 공간은 우리가 그 속에서 인식하는 객체의 순서나 배치 이외에 그 어떤 객관적 실체도 갖고 있지 않다.공간 안에 있는 객체들이 이루고 있는 어떤 질서나 배열을 보고 그 공간의 실체를 파악할 수 있다는 말이다. 시간 역시 그 자체로는 실체가 없지만 시간대별로 기록된 사건의 순서를 보고 특정 시간이란 실체를 알 수 있다. 시간은 그것을 측정하는 사건의 순서와 무관하게 존재하지 않는다.
이렇듯 쉽게 분간하기 힘든 철학적 시각의 차이는 현대 과학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철학자들이 인간의 지각을 통해 객관적 실체를 표현하는 과정에서 실제로 존재하는 복잡한 현상을 단순하게 축소하는 문제가 드러나면서, 과학자들 역시 인간의 감각에는 자신들을 당혹스럽게 하는 한계점이 있음을 알게 됐다.
프리즘을 통과한 햇빛이 굴절돼 스크린에 비친 무지개색 스펙트럼을 본 적이 있는 사람은 육안으로 볼 수 있는 가시광선의 전 영역을 다 본 것이다. 인간의 눈은 빛에너지의 전 영역 중에서 빨간색과 보라색 사이, 즉 가시광선 영역에만 반응을 보인다.
1cm의 수십만분의 1이라는 극미한 파장의 차이가 우리 눈에 보일지 여부를 결정한다. 빨간빛의 파장을 0.00007cm이고, 보랏빛의 파장은 0.00004cm이다. 파장이 이 영역에서 0.00001cm만 증가하거나 줄어들어도 우리 눈은 이 파장의 빛에 반응하지 않는다.
링컨 바넷 (2019). 우주와 아인슈타인 박사. 글봄크리에이티브
반유물론자였던 버클리는 위의 사실을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하늘과 땅을 구성하는 모든 것, 한 마디로 이 세상에서 최강의 구조를 형성하고 있는 모든 개체들은 인간의 주관적인 마인드가 없다면 실체는 존재하지 않는다. 단지 인간의 인식 방법에 따라 현재 명명된 실체를 부여받았을 뿐이다. 내 눈앞에 있는 개체들은 실제로 인식하지 못하거나, 내 기억 속에 없거나, 타인의 인식 속에도 존재하지 않는다면 실제로 존재한다 해도 엄밀히 말하면 존재하는 게 아니다. 그렇지 않다면 어떤 영원한 정신 속에만 존재하는 게 틀림없다.
아인슈타인은 이러한 논리를 최대 한계점까지 끌고갔다. 그는 시간조차도 직관, 즉 사고나 증명 없이 사실을 받아들이는 인지 영역으로 형성된 것이며, 색깔・모양・크기 등의 개념과 마찬가지로 공간이나 시간 역시 우리의 인식 범위 안에서 정의되고 존재한다고 말했다. 즉 공간은 우리가 그 속에서 인식하는 객체의 순서나 배치 이외에 그 어떤 객관적 실체도 갖고 있지 않다.공간 안에 있는 객체들이 이루고 있는 어떤 질서나 배열을 보고 그 공간의 실체를 파악할 수 있다는 말이다. 시간 역시 그 자체로는 실체가 없지만 시간대별로 기록된 사건의 순서를 보고 특정 시간이란 실체를 알 수 있다. 시간은 그것을 측정하는 사건의 순서와 무관하게 존재하지 않는다.
이렇듯 쉽게 분간하기 힘든 철학적 시각의 차이는 현대 과학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철학자들이 인간의 지각을 통해 객관적 실체를 표현하는 과정에서 실제로 존재하는 복잡한 현상을 단순하게 축소하는 문제가 드러나면서, 과학자들 역시 인간의 감각에는 자신들을 당혹스럽게 하는 한계점이 있음을 알게 됐다.
프리즘을 통과한 햇빛이 굴절돼 스크린에 비친 무지개색 스펙트럼을 본 적이 있는 사람은 육안으로 볼 수 있는 가시광선의 전 영역을 다 본 것이다. 인간의 눈은 빛에너지의 전 영역 중에서 빨간색과 보라색 사이, 즉 가시광선 영역에만 반응을 보인다.
1cm의 수십만분의 1이라는 극미한 파장의 차이가 우리 눈에 보일지 여부를 결정한다. 빨간빛의 파장을 0.00007cm이고, 보랏빛의 파장은 0.00004cm이다. 파장이 이 영역에서 0.00001cm만 증가하거나 줄어들어도 우리 눈은 이 파장의 빛에 반응하지 않는다.
링컨 바넷 (2019). 우주와 아인슈타인 박사. 글봄크리에이티브
2025년 3월 2일 오후 11시 5분
月火水木金土日
8. 예술 작품과 예술가
참된 예술작품은 비밀로 가득 차고 수수께끼 같은 신비스런 방식으로 ‘예술가에 의해' 생겨난다. 예술작품은 예술가로부터 분리되어 자립적인 생명을 획득하며 개성화되고, 정신적인 호흡을 하는 독립적인 주체가 될 뿐 아니라, 그것은 또한 물질적인 현실생황을 영위하며, 하나의 실체(Wesen)로서 존재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예술작품은 무관심하게 우연히 생겨난 현상도, 또한 정신생활 속에 무관심하게 머물러 있는 현상도 아니며, 다른 모든 실체와 마찬가지로 계속적으로 창조하는 능동적인 힘을 갖추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삶을 영위하고, 영향을 미치며, 이미 언급한 정신적 분위기의 창조에 관여한다. 예술작품이 걸작인지 졸작인지의 여부에 대한 문제도 역시 이와 같은 내적 관점에서 대답할 수 있다. 작품이 형식상으로 ‘불량'하다든가, 또는 너무 약하다고 할 때에 이러한 형식은 어느 경우에나 순수한 음향을 내는 영혼의 진동을 일으키기에는 빈약하고 너무 약한 것이다. 마찬가지로 실제에서는, 가령 어떤 그림이 여러 가지 가치 속에서 정당하게 존재한다고 해서, 또는 어떤 방법으로라도 찬 색과 따뜻한 색을 과학적으로 분리한다고 해서 그런 그림이 ‘잘 그린’ 그림이 아니라, 내적으로 충만한 삶을 영위하는 그림이 잘 그린 그림인 것이다. ‘훌륭한 소묘'하는 것은 상술한 내적 생명이 파괴되지 않고서는 아무것도 변경시킬 수 없는 바로 그런 존재인 것이다. 말하자면 이 소묘가 해부학, 식물학, 그 밖의 다른 과학에 모순되는지 아닌지를 전혀 고려하지 않는 것이다. 여기에서 문제는 외적인(따라서 다만 언제나 우연적인) 형식이 손상되는지 아닌지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예술가가 이 형식을 외적으로 존재하고 있는 그대로 사용할 것인지 아닌지 하는 점에 있는 것이다.색에 대해서도 이와 마찬가지로 적용해야 하는데, 그것은 색이 자연 속에서 이런 음향으로 존재한다 아니한다는 이유 때문이 아니라, 이런 음향을 가진 색이 그림에 필요한지, 또는 그렇지 않은지 하는 이유에 의한 것이다. 간단히 말해서, 예술가에게는 형식을 자기 목적에 필요한 만큼만 다룰 수 있는 권리와 의무가 부과되어 있는 것이다. 필요한 것은 해부학이나 그와 유사한 것도 아니요, 또한 이러한 과학은 주의(主義)상으로 전복시키는 것도 아니다. 다만, 예술가가 수단을 선택함에 있어서 완전한 무제한적 자유가 필요할 뿐이다. 이러한 필요성은 무제한적 자유에 대한 권리인데, 이 자유는 이와 같은 필요성에 근거하지 않을 경우에는 즉시 범죄가 되는 것이다. 예술적인 면에서 자유에 대한 권리는 이미 언급한 내면적 ・ 도덕적 차원인 것이다. 모든 인생에서(따라서 예술에서도) 고려해야 할 것은 목적의 순수성이다.
특히 과학적 사실을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것은 결코 그것을 맹목적으로 파기하는 것만큼 해롭지는 않다. 우선 첫번재 경우에서는 자연모방(물질모방)이 생겨나는데, 이 모방은 여러 가지 특수한 목적에 응용할 수 있는 것이다. 두번째 경우에서는 예술적인 기만이 생겨난다. 그것은 죄악으로서 사악한 결과로 이어진 긴 고리를 형성한다. 전자는 도덕적인 분위기를 공허하게 내버려 두며, 화석화(化石化)시켜 버린다. 또 후자는 그 분위기에 독을 주입해 병균으로 가득 차게 만든다.
회화는 예술이며, 대체로 예술이라고 하는 것은 공허하게 사라질 사물들을 맹목적으로 창조하는 것이 아니라, 충분한 목적이 있는 힘이다. 또한 예술은 인간의 영혼을 발전시키고 순화시키는 데에(삼각형의 운동에) 기여해야 한다. 예술은 자기 고유의 형식으로써 사물에서 영혼에 이르는 말을 주고받는 언어요. 또한 영혼이 이런 형식을 통해서만 획득할 수 있는 나날의 양식인 것이다.
예술이 이와 같은 과제를 멀리한다면 그 공백은 메워지지 않은 채로 남아 있을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예술을 대신할 수 있는 다른 어떠한 힘도 존재하지 않기 대문이다. 인간의 영혼이 보다 강한 삶을 영위하는 시대에는 언제나 예술도 역시 보다 생동적으로 된다. 왜냐하면 영혼과 예술은 교호작용과 상호완선하는 관계에 있기 때문이다.그리고 영혼이 물질주의적인 세계관과 불신, 또 거기에서 나온 투철한 실천적 노력 등에 의해서 마비되고 게으르게 되는 시대에는 ‘순수'예술은 인간의 특수한 목적을 위한 것이 아니라, 단지 목적없이 오직 예술을 위해서만 존재한다는 견해가 생겨나게 마련이다. 이러한 경우에 예술과 영혼의 유대는 반쯤 마비된다. 그러나 그것은 곧 보복을 받는다. 왜냐하면 예술가와 관람자는(영혼의 언어가 주는 도움으로 서로 대화하는) 더 이상 서로 이해를 나누지 못하며, 관람자는 예술가에게 등을 돌리거나 예술가를 마치 표면적인 능숙함과 재능 때문에 경탄하게 되는 마술사처럼 생각하기 때문이다.
우선 예술가는 그 상황을 바꾸도록 시도해야 한다. 즉 예술가는 예술에 대한 자신의 책무, 다시 말해서 자기 자신에 대한 책무를 인식하고, 또한 자기 자신을 그 상황의 주인으로서 관찰할 것이 아니라 고결한 목적을 지닌, 명확하고 위대하며, 신성한 심부름꾼으로서 관찰해야만 하는 것이다. 그는 자기 자신을 교화시키고 자신의 고유한 영혼에 침잠해, 이 고유한 영혼을 우선 가다듬고 배양해야 한다. 그리하여 그의 외적 재능은 모르는 사람의 손에 끼워진 잃어버린 장갑처럼 공허하고 맹목적인 손의 겉모양이 되지 않고 무엇인가를 감쌀 수 있어야 한다.
예술가는 무엇인가 전달하지 않으면 안 된다. 무릇 예술가의 임무라는 것은 형식을 지배하는 데에 있지 않고, 내용에 적합한 형식을 만드는 데 있기 때문이다. 예술가는 결코 인생의 행운아가 아니다. 즉 그에게는 아무런 의무감없이 살 권리가 없으며, 때때로 자기의 십자가가 될 괴로운 과업을 수행해야 하는 것이다. 예술가는 자기의 행동, 감정, 생각 등 모든 것이, 섬세하며 만질 수는 없으나 확고한 소재를 형성하며, 여기에서 자기의 작품이 탄생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또한 그렇기 때문에 그는 인생에서는 자유롭지 못하나, 예술에서만은 자유를 구가할 수 있다는 점을 깨달아야 한다.
그리하여 여기에서 예술가는 비예술가와 비교할 때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책무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 자명해진다.
첫째, 그는 자기의 천부적 재능에 보답해야만 한다.
둘째, 그의 행동, 사상, 감정 등은 모든 사람에게서처럼 정신적 분위기를 형성하며, 이 때에 그것들은 정신적 공기를 맑게 하거나 또는 오염시킨다.
셋째, 이러한 행동, 사상, 감정 등은 그의 작품을 위한 소재가 되는데, 이 작품은 다시 한 번 정신적 분위기에 관여한다. 예술가는 사르펠라단(Sar Peladan, 1859-1918)이 말한 바와 같이 ‘임금’으로 군림하는데, 이것은 그가 위대한 힘을 가졌다는 의미에서뿐만 아니라, 그의 의무 또한 막중하다는 뜻에서도 그러한 것이다.
예술가를 ‘미'의 사제라고 할 경우에 이러한 미 역시 우리가 어디에서나 발견할 수 있던 내면적 가치라는 동일한 원칙을 통해서 추구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미는 우리에게 오늘날까지 언제 어디서나 올바른 봉사자로 일해 왔던 소위 내적 위대성과 필연성의 척도를 통해서만 평가할 수 있다.
내적 영혼의 필연성이 생겨나는 것은 아름답다. 내적으로 아름다운 것은 아름답다.
내일의 예술에 원천이 되는 오늘의 예술을 최초로 개척한 사람 중의 하나인, 말하자면 최초로 영혼적 구성을 이룬 사람 중의 하나인 메테를링크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 세상에 영혼만큼 미를 열망하거나, 또 쉽게 미화시키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그러기에 미에 헌신하는 영혼의 지배에 대항할 사람은 별로 없는 것이다.”
영혼의 이와 같은 특성은 기름과도 같으며, 이 기름을 통해서 정신적 삼각형의 운동, 즉 느리고 거의 볼 수 없으며, 때로는 외적으로 정지된 듯하나 지속적으로 중단하지 않는 운동이 앞과 뒤를 향해 나아갈 수 있는 것이다.
바실리 칸딘스키 (1979). 예술에서의 정신적인 것에 대하여. 열화당
특히 과학적 사실을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것은 결코 그것을 맹목적으로 파기하는 것만큼 해롭지는 않다. 우선 첫번재 경우에서는 자연모방(물질모방)이 생겨나는데, 이 모방은 여러 가지 특수한 목적에 응용할 수 있는 것이다. 두번째 경우에서는 예술적인 기만이 생겨난다. 그것은 죄악으로서 사악한 결과로 이어진 긴 고리를 형성한다. 전자는 도덕적인 분위기를 공허하게 내버려 두며, 화석화(化石化)시켜 버린다. 또 후자는 그 분위기에 독을 주입해 병균으로 가득 차게 만든다.
회화는 예술이며, 대체로 예술이라고 하는 것은 공허하게 사라질 사물들을 맹목적으로 창조하는 것이 아니라, 충분한 목적이 있는 힘이다. 또한 예술은 인간의 영혼을 발전시키고 순화시키는 데에(삼각형의 운동에) 기여해야 한다. 예술은 자기 고유의 형식으로써 사물에서 영혼에 이르는 말을 주고받는 언어요. 또한 영혼이 이런 형식을 통해서만 획득할 수 있는 나날의 양식인 것이다.
예술이 이와 같은 과제를 멀리한다면 그 공백은 메워지지 않은 채로 남아 있을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예술을 대신할 수 있는 다른 어떠한 힘도 존재하지 않기 대문이다. 인간의 영혼이 보다 강한 삶을 영위하는 시대에는 언제나 예술도 역시 보다 생동적으로 된다. 왜냐하면 영혼과 예술은 교호작용과 상호완선하는 관계에 있기 때문이다.그리고 영혼이 물질주의적인 세계관과 불신, 또 거기에서 나온 투철한 실천적 노력 등에 의해서 마비되고 게으르게 되는 시대에는 ‘순수'예술은 인간의 특수한 목적을 위한 것이 아니라, 단지 목적없이 오직 예술을 위해서만 존재한다는 견해가 생겨나게 마련이다. 이러한 경우에 예술과 영혼의 유대는 반쯤 마비된다. 그러나 그것은 곧 보복을 받는다. 왜냐하면 예술가와 관람자는(영혼의 언어가 주는 도움으로 서로 대화하는) 더 이상 서로 이해를 나누지 못하며, 관람자는 예술가에게 등을 돌리거나 예술가를 마치 표면적인 능숙함과 재능 때문에 경탄하게 되는 마술사처럼 생각하기 때문이다.
우선 예술가는 그 상황을 바꾸도록 시도해야 한다. 즉 예술가는 예술에 대한 자신의 책무, 다시 말해서 자기 자신에 대한 책무를 인식하고, 또한 자기 자신을 그 상황의 주인으로서 관찰할 것이 아니라 고결한 목적을 지닌, 명확하고 위대하며, 신성한 심부름꾼으로서 관찰해야만 하는 것이다. 그는 자기 자신을 교화시키고 자신의 고유한 영혼에 침잠해, 이 고유한 영혼을 우선 가다듬고 배양해야 한다. 그리하여 그의 외적 재능은 모르는 사람의 손에 끼워진 잃어버린 장갑처럼 공허하고 맹목적인 손의 겉모양이 되지 않고 무엇인가를 감쌀 수 있어야 한다.
예술가는 무엇인가 전달하지 않으면 안 된다. 무릇 예술가의 임무라는 것은 형식을 지배하는 데에 있지 않고, 내용에 적합한 형식을 만드는 데 있기 때문이다. 예술가는 결코 인생의 행운아가 아니다. 즉 그에게는 아무런 의무감없이 살 권리가 없으며, 때때로 자기의 십자가가 될 괴로운 과업을 수행해야 하는 것이다. 예술가는 자기의 행동, 감정, 생각 등 모든 것이, 섬세하며 만질 수는 없으나 확고한 소재를 형성하며, 여기에서 자기의 작품이 탄생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또한 그렇기 때문에 그는 인생에서는 자유롭지 못하나, 예술에서만은 자유를 구가할 수 있다는 점을 깨달아야 한다.
그리하여 여기에서 예술가는 비예술가와 비교할 때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책무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 자명해진다.
첫째, 그는 자기의 천부적 재능에 보답해야만 한다.
둘째, 그의 행동, 사상, 감정 등은 모든 사람에게서처럼 정신적 분위기를 형성하며, 이 때에 그것들은 정신적 공기를 맑게 하거나 또는 오염시킨다.
셋째, 이러한 행동, 사상, 감정 등은 그의 작품을 위한 소재가 되는데, 이 작품은 다시 한 번 정신적 분위기에 관여한다. 예술가는 사르펠라단(Sar Peladan, 1859-1918)이 말한 바와 같이 ‘임금’으로 군림하는데, 이것은 그가 위대한 힘을 가졌다는 의미에서뿐만 아니라, 그의 의무 또한 막중하다는 뜻에서도 그러한 것이다.
예술가를 ‘미'의 사제라고 할 경우에 이러한 미 역시 우리가 어디에서나 발견할 수 있던 내면적 가치라는 동일한 원칙을 통해서 추구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미는 우리에게 오늘날까지 언제 어디서나 올바른 봉사자로 일해 왔던 소위 내적 위대성과 필연성의 척도를 통해서만 평가할 수 있다.
내적 영혼의 필연성이 생겨나는 것은 아름답다. 내적으로 아름다운 것은 아름답다.
내일의 예술에 원천이 되는 오늘의 예술을 최초로 개척한 사람 중의 하나인, 말하자면 최초로 영혼적 구성을 이룬 사람 중의 하나인 메테를링크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 세상에 영혼만큼 미를 열망하거나, 또 쉽게 미화시키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그러기에 미에 헌신하는 영혼의 지배에 대항할 사람은 별로 없는 것이다.”
영혼의 이와 같은 특성은 기름과도 같으며, 이 기름을 통해서 정신적 삼각형의 운동, 즉 느리고 거의 볼 수 없으며, 때로는 외적으로 정지된 듯하나 지속적으로 중단하지 않는 운동이 앞과 뒤를 향해 나아갈 수 있는 것이다.
바실리 칸딘스키 (1979). 예술에서의 정신적인 것에 대하여. 열화당
2025년 2월 22일 오후 9시 41분
月火水木金土日
“Learn to recognize omens, and follow them,” thr old king had said.
An omen. The boy smiled to himself. He picked up the two stones and put them back in his pouch. He didn’t consider mending the holeㅡthe stones could fall through any time they wanted. He had laerned that there were certain things one shouldn’t ask about, so as not to flee from one’s own Personal Legend. “I promised that I would make my own decisions,” he said to himeself.
But the stones had told him that the old man was still with him, and that made him feel more confident. He looked around at the empty plaza again, feeling less desperate than before. This wasn’t a strange place; it was a new one.
After all, what he had always wanted was just that: to know new places. Even if he never got to the Pyramids, he had alreadt traveled father than any shepherd he knew. Oh, if they only knew how different things are just two hours by ship from where they are, he thought. Although his new world at the moment was just en empty marketplace, he had already seen it when it was teeming with life, and he would never forget it. He remembered the sword. It hurts him a bit to think about it, but he had never seen it like before. As he mused about these things, he realized that he had to choose between thinking of himself as the poor victim of thief and as an adventurer in quest of his treasure.
“I’m an adventurer, looking for treasure,” he said to himself.
Paulo Coelho (1993). The Alchemist. Harper One
An omen. The boy smiled to himself. He picked up the two stones and put them back in his pouch. He didn’t consider mending the holeㅡthe stones could fall through any time they wanted. He had laerned that there were certain things one shouldn’t ask about, so as not to flee from one’s own Personal Legend. “I promised that I would make my own decisions,” he said to himeself.
But the stones had told him that the old man was still with him, and that made him feel more confident. He looked around at the empty plaza again, feeling less desperate than before. This wasn’t a strange place; it was a new one.
After all, what he had always wanted was just that: to know new places. Even if he never got to the Pyramids, he had alreadt traveled father than any shepherd he knew. Oh, if they only knew how different things are just two hours by ship from where they are, he thought. Although his new world at the moment was just en empty marketplace, he had already seen it when it was teeming with life, and he would never forget it. He remembered the sword. It hurts him a bit to think about it, but he had never seen it like before. As he mused about these things, he realized that he had to choose between thinking of himself as the poor victim of thief and as an adventurer in quest of his treasure.
“I’m an adventurer, looking for treasure,” he said to himself.
Paulo Coelho (1993). The Alchemist. Harper One
2025년 2월 15일 오후 3시 30분
月火水木金土日
헤르메스는 인간을 소우주라 불렀는데, 그것은인간, 즉 ‘작은 세계'가 대우주 혹은 ‘커다란 세계'의 모든 것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대우주에는 빛나는 해와 달이 있으며, 인간도 역시 빛나는 2개의 눈이 있다. 오른쪽 눈은 태양. 왼쪽 눈은 달을 나타낸다. 대우주에는 산과 언덕들이 있으며 인간에게는 뼈와 살이 있다. 대우주에는 하늘과 별들이 있으며 인간에게는 머리와 귀가 있다. 대우주에는 황도십이궁이 있으며, 인간 역시 외이에서부터 발까지 쌍어궁이라 불리는 것이 있다.
수사본 CCXCIX. 마르시아나 박물관
수사본 CCXCIX. 마르시아나 박물관
2025년 2월 10일 오후 3시 30분
月火水木金土日
이러한 위기의 시대에서 예술은 어떻게 기능할 수 있을까? 나에게 큰 감동을 준 예술가들은 어떤 사람들이었나? 한마디로 위대한 예술가들은 기존의 사회적 질서와 가치에 대한 도전을 통해, 시대의 변화를 선도하거나 반영하는 역할을 맡아온 이들이다. 예술은 그 자체로 ‘질문’을 던지는 방식이다. 전통적인 예술의 목적 중 하나는 관객에게 질문을 제기하고, 그들이 고정된 사고에서 벗어나 새로운 시각을 발견하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혼돈의 시대에서 예술가는 관객을 단순히 위로하거나 자극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더 깊은 문제의식을 불러일으키고자 한다. 기후 변화와 같은 환경 문제를 다룬 작품은 관객에게 ‘우리의 존재는 환경과 어떻게 연결되는가?’라는 질문을 던지며, 사회적 변화를 위한 사고의 전환을 요구한다.
예술은 사회적 ‘저항'과 ‘비판'의 중요한 도구가 될 수 있다. 정치적 억압, 인권침해, 경제적 불평등 등이 사회를 휘감고 있을 때, 예술가는 이를 전면에 내세워 사회의 불합리함과 모순을 드러내는 작품을 창조하는 것이다. 예술은 때로는 ‘반란'의 형태로 나타나, 기존의 권력구조에 대한 도전과 반항의 메시지를 담는다. 20세기 초, 특히 다다이즘이나 초현실주의 운동은 전쟁과 폭력의 참상에 대한 반발로서 등장했으며, 이는 당시 사회에 대한 예술적 저항이자 도전이었다.
예술은 혼돈과 광기의 시대 속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는다. 그것은 단순히 미적 경험을 제공하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예술은 사람들에게 현상을 비판적으로 바라보고, 사회적 문제를 제기하며, 존재의 의미를 탐구하게 만드는 힘을 지닌다. 예술가는 시대를 반영하는 동시에, 그 시대를 변화시키는 역할을 한다. 혼돈과 광기의 상황 속에서 예술은 여전히 우리의 의식을 확장하고, 그로써 보다 나은 미래를 위한 길을 제시할 수 있는 중요한 과제를 안고 있다.
혼돈과 광기의 시대는 예술가들을 고통스럽게 한다. 그 고통과 싸우다 어떤 이는 절망에 빠져 자살을 하거나, 순응과 무저항으로 살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고통이 예술을 통해 질문과 저항과 비판의 에너지로 작동한다는 사실을 알아차린다면 우리의 미래는 결코 어둡지 않다는 생각이다.
김영호 (2025). "위기의 시대, 예술가들은 무엇을 하나", 서울아트가이드, Vol.277, 2025년 1월호
예술은 사회적 ‘저항'과 ‘비판'의 중요한 도구가 될 수 있다. 정치적 억압, 인권침해, 경제적 불평등 등이 사회를 휘감고 있을 때, 예술가는 이를 전면에 내세워 사회의 불합리함과 모순을 드러내는 작품을 창조하는 것이다. 예술은 때로는 ‘반란'의 형태로 나타나, 기존의 권력구조에 대한 도전과 반항의 메시지를 담는다. 20세기 초, 특히 다다이즘이나 초현실주의 운동은 전쟁과 폭력의 참상에 대한 반발로서 등장했으며, 이는 당시 사회에 대한 예술적 저항이자 도전이었다.
예술은 혼돈과 광기의 시대 속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는다. 그것은 단순히 미적 경험을 제공하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예술은 사람들에게 현상을 비판적으로 바라보고, 사회적 문제를 제기하며, 존재의 의미를 탐구하게 만드는 힘을 지닌다. 예술가는 시대를 반영하는 동시에, 그 시대를 변화시키는 역할을 한다. 혼돈과 광기의 상황 속에서 예술은 여전히 우리의 의식을 확장하고, 그로써 보다 나은 미래를 위한 길을 제시할 수 있는 중요한 과제를 안고 있다.
혼돈과 광기의 시대는 예술가들을 고통스럽게 한다. 그 고통과 싸우다 어떤 이는 절망에 빠져 자살을 하거나, 순응과 무저항으로 살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고통이 예술을 통해 질문과 저항과 비판의 에너지로 작동한다는 사실을 알아차린다면 우리의 미래는 결코 어둡지 않다는 생각이다.
김영호 (2025). "위기의 시대, 예술가들은 무엇을 하나", 서울아트가이드, Vol.277, 2025년 1월호
2025년 2월 8일 오후 1시 30분
月火水木金土日
한 단 위로 오를 때는 아랫단에서 손을 떼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위에 오를 수가 없다.
아랫단에서 손을 떼어야 한다.
위로 한 단 오를 때마다 더 눈부신 빛과 사랑의 태양이 뜬다.
윗단에 오를 때는 아랫단에서 손을 떼라.
그렇지 않으면 위에 오를 수가 없다.
아랫단에서 손을 떼어야 한다.
위로 한 단 오를 때마다 더 눈부신 빛과 사랑의 태양이 뜬다.
윗단에 오를 때는 아랫단에서 손을 떼라.
단 카스터 (2023). 정신력의 기적. 문예출판사
2025년 1월 29일 오전 2시 30분
月火水木金土日
영혼의 비가시성은 내부 신체기관의 비가시성과 유사하다. 우리는 이 신체기관의 기능과 역기능을 통제 할 수 없더라도 그것을 자각할 수는 있다. 반면, 정신의 삶은 순수한 활동이며, 다른 활동과 마찬가지로 마음대로 작동되거나 중단될 수도 있다. 게다가 정념의 소재지는 비가시적이지만, 정념은 자신을 겉으로 표현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우리는 수치심을 느끼거나 당혹스러우면 얼굴이 붉어지고, 공포나 분노를 느끼면 얼굴이 창백해진다. 또한 행복감에 환한 얼굴을 하거나 낙담하여 풀이 죽은 표정을 할 수 있다. 그리고 우리는 정념을 드러내지 않기 위해 상당한 자제력 훈련을 해야한다. 정신은 단지 무심한 태도를 외부로 드러낼 뿐이다. 무심한 태도란 주변 세계를 분명히 무시하는 태도이며, 우리 내면에 실제 발생하는 것을 결코 드러내지 않는 전적으로 소극적인 것이다.
한나아렌트 (2019). 정신의 삶 - 사유와 의지. 푸른숲