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3월 28일 오전 12시 48분
月火水木金土日
불 공기
바깥으로 나와 크게 한 번 공기를 들이마신다. 경북 의성에서 시작되어 아직도 타오르는 불 공기를 성북동에서 들이킨다.
바깥으로 나와 크게 한 번 공기를 들이마신다. 경북 의성에서 시작되어 아직도 타오르는 불 공기를 성북동에서 들이킨다.
2025년 3월 23일 오후 11시 42분
月火水木金土日
고비사막
어미낙타는 보통 14개월 동안 새끼를 몸에 베고, 무리에서 떨어져 한 마리의 새끼를 낳는다. 새끼가 네 발로 일어서기까지 보통 3일이 걸리고, 일어서야지만 어미의 젖을 물 수 있고 제 발로 걸어 무리로 돌아 올 수 있는 상태에 이른다.
3일동안 새끼는 사막늑대나 다른 짐승들의 사냥 위험에 고스란히 노출된다. 어미는 새끼 주변에서 그 시간을 함께 보낸다. 다큐멘터리에서는 새끼가 일어나는 속도가 더뎌지자 유목민이 새끼를 안고 오토바이에 타서 유목지로 데려오는데, 이 때 어미 낙타는 오토바이 뒤를 전력으로 달려 뒤따라간다. 64km정도의 속도라고 다큐에서는 말한다. 낙타는 몸에 열을 내지 않기 위해 전력으로 뛰는 일이 거의 없다고 한다. 하지만 예외는 어디에나 존재한다. 어미 낙타가 사막을 전력으로 질주 하는 모습에서 맹목적인 초점과 목숨을 바치는 헌신을 본다. 기존의 속도를 벗어나 새로운 속도를 내야만 새끼의 곁을 지킬 수 있기 때문 아니였을까.
새끼 낙타는 어미 낙타의 방향과 속도를 결정한다. 그렇다면 인간으로 태어난 나의 방향과 속도는 무엇에 의해 결정되는가. 사막을 달리는 어미 낙타의 절반이라도 나의 전력을 내 보았는가. 아직도 남아있는 덜어내야 할 부유물이 수면위로 떠 오른다.
2025년 3월 17일 오전 3시 25분
月火水木金土日
사진이여야만 하는 이유
사진을 생각하고 설명할 때 ‘시각화’ 라는 단어를 자주 사용한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생각해 보면 각자의 내면 안에 있는 ‘무엇'을 세상으로부터 찾거나 만들어 보기 위함이 아닐까?
사진은 이미지고, 시각예술이다. 그렇다면, 사진은 보는 것. 즉,시각화에 중점을둔 것일까?
사진은 시각화된 이미지의 ‘물질화'를 가능하게 한다. 우리가 실제로 보게되는 장면들은 개인의 세계 안에서만 존재할 뿐, 공통의 현실에서 부재한다. 개인의 욕망과 감정, 상상과 꿈, 속 마음과 고유한 영혼 같은 것들이 그 예이다.
또한 우리가 이야기하는 ‘현실'이나 ‘세계'또한 개인의 고유한 육안을 통해 제한된 스펙트럼 안에서의 경험에 불과하다.
만약 사진이 ‘시각화’를 위한 것이라면, 예술가 개인의 심안을 통해서 이미지의 ‘시각화'는 언제든지 풍부하게 가능하다. 따라서 사진으로 촬영되기 이전에 이미 ‘시각화'를 완성 할 수 있다는 의미로의 접근이 가능하다.
그러나 ‘물질화'는 ‘시각화'된 이미지를 현실에 낳음으로써 공동의 현실에 존재한다. 엄마의 뱃 속에 있던 아기가 세상에 나오는 것을 생각해 보자. 아기가 뱃 속에 잉태되었을 때, 사람들은 뱃 속에 아기가 있다는 사실을 안다.
그러나 오직 산모만이 아이를 느끼고 경험할 수 있다. 오직 ‘출산’을 통해 아기가 세상 밖에 나왔을 때, 우리는 비로소 산모만이 개인적으로 느끼고 경험하던 아기를 만나고, 느끼며 비로소 그 존재를 경험하게 된다.
‘시각화'의 과정에서는 모든 결핍과 단점 그리고 약점들이 손쉽게 보완된다. 그러나 한번 ‘물질화'가 된 이미지는 그 자체로 고유성을 갖게되며 외부의 영향에 고스란히 노출된다.
사진을 생각하고 설명할 때 ‘시각화’ 라는 단어를 자주 사용한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생각해 보면 각자의 내면 안에 있는 ‘무엇'을 세상으로부터 찾거나 만들어 보기 위함이 아닐까?
사진은 이미지고, 시각예술이다. 그렇다면, 사진은 보는 것. 즉,시각화에 중점을둔 것일까?
사진은 시각화된 이미지의 ‘물질화'를 가능하게 한다. 우리가 실제로 보게되는 장면들은 개인의 세계 안에서만 존재할 뿐, 공통의 현실에서 부재한다. 개인의 욕망과 감정, 상상과 꿈, 속 마음과 고유한 영혼 같은 것들이 그 예이다.
또한 우리가 이야기하는 ‘현실'이나 ‘세계'또한 개인의 고유한 육안을 통해 제한된 스펙트럼 안에서의 경험에 불과하다.
만약 사진이 ‘시각화’를 위한 것이라면, 예술가 개인의 심안을 통해서 이미지의 ‘시각화'는 언제든지 풍부하게 가능하다. 따라서 사진으로 촬영되기 이전에 이미 ‘시각화'를 완성 할 수 있다는 의미로의 접근이 가능하다.
그러나 ‘물질화'는 ‘시각화'된 이미지를 현실에 낳음으로써 공동의 현실에 존재한다. 엄마의 뱃 속에 있던 아기가 세상에 나오는 것을 생각해 보자. 아기가 뱃 속에 잉태되었을 때, 사람들은 뱃 속에 아기가 있다는 사실을 안다.
그러나 오직 산모만이 아이를 느끼고 경험할 수 있다. 오직 ‘출산’을 통해 아기가 세상 밖에 나왔을 때, 우리는 비로소 산모만이 개인적으로 느끼고 경험하던 아기를 만나고, 느끼며 비로소 그 존재를 경험하게 된다.
‘시각화'의 과정에서는 모든 결핍과 단점 그리고 약점들이 손쉽게 보완된다. 그러나 한번 ‘물질화'가 된 이미지는 그 자체로 고유성을 갖게되며 외부의 영향에 고스란히 노출된다.
2025년 3월 12일 오전 9시 13분
月火水木金土日
기억하는 향기 2
토론토 피어슨 공항에서 내쉬고, 인천 공항에서 들이마셨던 공기
코와 목 뒤로 꺼끌한 스침과 똑같이 파람에도 한 겹 탁해진 하늘
토론토 아일랜드에서 맡았던 온타리오 호수 위 햇볕 향기와 인천대교를 건너며 버스창문 너머의 바다 짠 내음
토론토 피어슨 공항에서 내쉬고, 인천 공항에서 들이마셨던 공기
코와 목 뒤로 꺼끌한 스침과 똑같이 파람에도 한 겹 탁해진 하늘
토론토 아일랜드에서 맡았던 온타리오 호수 위 햇볕 향기와 인천대교를 건너며 버스창문 너머의 바다 짠 내음
2025년 3월 9일 오후 6시 41분
月火水木金土日
기억하는 향기 1
반달 모양 쇠파이프를 이어 길에 만든 지붕
동네 사람들은 그 길을 장미 덩굴 길이라 불렀던 것 같다
실내화 가방을 빙글빙글 돌리며
학교와 집을 잇는 그 길을 덜 익은 사색과 함께 몇 계절을 지났다
겨울, 봄, 여름, 가을, 어떤 계절이였는지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바람이 따뜻해지면 쇠파이프를 따라 자란 줄기가 초록색으로 변하고 꽃봉오리가 솟았다
겹겹이 포개어진 빨갛고 황홀한 향기
하늘이 가려질 만큼 빽빽하게 엉켜 있던 가시 줄기와 꽃
지그재그로 걸으며 덩굴에 파묻혀 집으로 돌아가는 길을 마음대로 늘렸던 기억
반달 모양 쇠파이프를 이어 길에 만든 지붕
동네 사람들은 그 길을 장미 덩굴 길이라 불렀던 것 같다
실내화 가방을 빙글빙글 돌리며
학교와 집을 잇는 그 길을 덜 익은 사색과 함께 몇 계절을 지났다
겨울, 봄, 여름, 가을, 어떤 계절이였는지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바람이 따뜻해지면 쇠파이프를 따라 자란 줄기가 초록색으로 변하고 꽃봉오리가 솟았다
겹겹이 포개어진 빨갛고 황홀한 향기
하늘이 가려질 만큼 빽빽하게 엉켜 있던 가시 줄기와 꽃
지그재그로 걸으며 덩굴에 파묻혀 집으로 돌아가는 길을 마음대로 늘렸던 기억
2025년 3월 8일 오전 10시 52분
月火水木金土日
보라빛 비
눈 모서리의 방울이 맺힐 새 없이 떨어졌다. 이미 한 병의 술을 함께 나누어 마신 터라, 눈방울은 한여름 마주 앉은 식탁 사이에서 소나기가 되었다.
소파에 기대어 다리를 뻗고 음악이 시작되었을 때, 나는 꽤나 술기운이 올라와 온전히 보고 듣지 못했던 그 노래가 어제 문득 생각이 났을까.
눈 모서리의 방울이 맺힐 새 없이 떨어졌다. 이미 한 병의 술을 함께 나누어 마신 터라, 눈방울은 한여름 마주 앉은 식탁 사이에서 소나기가 되었다.
소파에 기대어 다리를 뻗고 음악이 시작되었을 때, 나는 꽤나 술기운이 올라와 온전히 보고 듣지 못했던 그 노래가 어제 문득 생각이 났을까.
2025년 3월 4일 오후 9시 35분
月火水木金土日
초저녁에 수영을 마치고 동네 산책 시간을 갖는다.
작년에 이곳으로 이사 온 뒤로 자주 지나치던 길에 동상이 하나 있는데, 며칠 전 그곳에서 한 남녀가 가만히 서서 무언가를 보고 있던 게 궁금해 같은 장소에서 잠시 길을 멈췄다.
《님의 침묵》 한용운
님은 갔습니다. 아아,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갔습니다.
푸른 산빛을 깨치고 단풍나무 숲을 향하여 난 작은 길을 걸어서 차마 떨치고 갔습니다.
황금의 꽃같이 굳고 빛나던 옛 맹세는 차디찬 티끌이 되어서 한숨의 미풍에 날아갔습니다.
날카로운 첫 키스의 추억은 나의 운명의 지침을 돌려 놓고 뒷걸음질쳐서 사라졌습니다.
나는 향기로운 님의 말소리에 귀먹고 꽃다운 님의 얼굴에 눈멀었습니다.
사랑도 사람의 일이라 만날 때에 미리 떠날 것을 염려하고 경계하지 아니한 것은 아니지만, 이별은 뜻밖의 일이 되고 놀란 가슴은 새로운 슬픔에 터집니다.
그러나 이별을 쓸데없는 눈물의 원천으로 만들고 마는 것은 스스로 사랑을 깨치는 것인 줄 아는 까닭에 걷잡을 수 없는 슬픔의 힘을 옮겨서 새 희망의 정수박이에 들어부었습니다.
우리는 만날 때에 떠날 것을 염려하는 것과 같이 떠날 때에 다시 만날 것을 믿습니다.
아아, 님은 갔지마는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하였습니다.
제 곡조를 못 이기는 사랑의 노래는 님의 침묵을 휩싸고 돕니다.
작년에 이곳으로 이사 온 뒤로 자주 지나치던 길에 동상이 하나 있는데, 며칠 전 그곳에서 한 남녀가 가만히 서서 무언가를 보고 있던 게 궁금해 같은 장소에서 잠시 길을 멈췄다.
《님의 침묵》 한용운
님은 갔습니다. 아아,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갔습니다.
푸른 산빛을 깨치고 단풍나무 숲을 향하여 난 작은 길을 걸어서 차마 떨치고 갔습니다.
황금의 꽃같이 굳고 빛나던 옛 맹세는 차디찬 티끌이 되어서 한숨의 미풍에 날아갔습니다.
날카로운 첫 키스의 추억은 나의 운명의 지침을 돌려 놓고 뒷걸음질쳐서 사라졌습니다.
나는 향기로운 님의 말소리에 귀먹고 꽃다운 님의 얼굴에 눈멀었습니다.
사랑도 사람의 일이라 만날 때에 미리 떠날 것을 염려하고 경계하지 아니한 것은 아니지만, 이별은 뜻밖의 일이 되고 놀란 가슴은 새로운 슬픔에 터집니다.
그러나 이별을 쓸데없는 눈물의 원천으로 만들고 마는 것은 스스로 사랑을 깨치는 것인 줄 아는 까닭에 걷잡을 수 없는 슬픔의 힘을 옮겨서 새 희망의 정수박이에 들어부었습니다.
우리는 만날 때에 떠날 것을 염려하는 것과 같이 떠날 때에 다시 만날 것을 믿습니다.
아아, 님은 갔지마는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하였습니다.
제 곡조를 못 이기는 사랑의 노래는 님의 침묵을 휩싸고 돕니다.
2025년 3월 2일 오후 11시 51분
月火水木金土日
재등록
“도서 대출을 원하시면 재등록을 해 주셔야 합니다" 대출 카드를 만든 지 2년이 지나서 재등록이 필요하다고 사서분께서 알려주셨다.
카드를 처음 만들던 날과 도서관 사서대 앞에 서 있는 지금 순간이 깜빡이듯 빠른 속도로 순식간에 머릿속을 스친다. 마음에 드는 책 몇 권을 빌려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잠시 생각에 잠겼다.
궁금한 것들에 대해 질문하고 싶었던 나의 2년 전 다짐을 어쩌다가 오늘에서야 다시 마주하게 된 것일까? 생각의 끝에 오늘 대출 카드를 재등록 한 일이 천만다행으로 느껴졌다. 감사한 일이다.
“도서 대출을 원하시면 재등록을 해 주셔야 합니다" 대출 카드를 만든 지 2년이 지나서 재등록이 필요하다고 사서분께서 알려주셨다.
카드를 처음 만들던 날과 도서관 사서대 앞에 서 있는 지금 순간이 깜빡이듯 빠른 속도로 순식간에 머릿속을 스친다. 마음에 드는 책 몇 권을 빌려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잠시 생각에 잠겼다.
궁금한 것들에 대해 질문하고 싶었던 나의 2년 전 다짐을 어쩌다가 오늘에서야 다시 마주하게 된 것일까? 생각의 끝에 오늘 대출 카드를 재등록 한 일이 천만다행으로 느껴졌다. 감사한 일이다.
2025년 3월 2일 오전 5시 38분
月火水木金土日
신문 더미를 버리러 나갔다가 나뭇가지 끄트머리에 하얗고 조그만한 꽃 봉오리 여러개가 올라온 것을 보았다. 검고파란 조용한 새벽.
2025년 3월 2일 오전 5시 11분
月火水木金土日
정독 도서관을 걸으며
엊그제와 다르게 어제는 도서관 휴관일이었다. 주차장 진입을 기다리는 차량 틈에서 옆 길로 안내해 준 아저씨로부터 출구 차단기를 열어 주신 아주머니.
문 앞에 동상처럼 쪼그려 앉아있던 사람, 날아가지 않고 우는 까치 두 마리, 그리고 도서관 분수대 옆에서 또다시 ‘하얀 고양이’를 만났다.
선명한 꿈에서 깨어나면 시작되는, 막연하다가도 점차 분명해지는, 명쾌한 설명이 어려운 전부가 도서관 앞 정원 곳곳으로 다가오는 오후를 걷는다.
저녁에 맡은 짙은 비 냄새향기가 오늘 떨어지고 있구나. ‘도서관 문이 열리면 돌아와서 책을 빌려봐야지’ 하고 도서관 앞 정원을 빠져나왔다.
엊그제와 다르게 어제는 도서관 휴관일이었다. 주차장 진입을 기다리는 차량 틈에서 옆 길로 안내해 준 아저씨로부터 출구 차단기를 열어 주신 아주머니.
문 앞에 동상처럼 쪼그려 앉아있던 사람, 날아가지 않고 우는 까치 두 마리, 그리고 도서관 분수대 옆에서 또다시 ‘하얀 고양이’를 만났다.
선명한 꿈에서 깨어나면 시작되는, 막연하다가도 점차 분명해지는, 명쾌한 설명이 어려운 전부가 도서관 앞 정원 곳곳으로 다가오는 오후를 걷는다.
저녁에 맡은 짙은 비 냄새향기가 오늘 떨어지고 있구나. ‘도서관 문이 열리면 돌아와서 책을 빌려봐야지’ 하고 도서관 앞 정원을 빠져나왔다.
2025년 2월 22일 오전 12시 13분
月火水木金土日
수영장에서
잠시 물속에서 나와 어린 아이들이 수영하는 모습을 바라본다. 동그란 입으로 숨을 잡고 가느다란 팔을 돌려가며 앞으로 헤엄치는 모습이 전혀 이질적이지가 않다.
시선을 거두고 다시 물속으로 들어가 수영장 바닥을 바라보며 헤엄치는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우리 모두 바다속에 살았던 때를 기억하고 있는 것 아닐까?' ‘생명과 직결되는 숨을 참아가며 물속으로 뛰어드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한 아이는 펭귄처럼 헤엄치고, 어떤 아저씨는 물개처럼, 지난번에 만난 할아버지는 해파리처럼 저마다의 ‘물 속’을 즐긴다. 수영을 마치고 샤워실로 돌아오니 목욕탕 안에도 사람들이 가득하다.
잠시 물속에서 나와 어린 아이들이 수영하는 모습을 바라본다. 동그란 입으로 숨을 잡고 가느다란 팔을 돌려가며 앞으로 헤엄치는 모습이 전혀 이질적이지가 않다.
시선을 거두고 다시 물속으로 들어가 수영장 바닥을 바라보며 헤엄치는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우리 모두 바다속에 살았던 때를 기억하고 있는 것 아닐까?' ‘생명과 직결되는 숨을 참아가며 물속으로 뛰어드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한 아이는 펭귄처럼 헤엄치고, 어떤 아저씨는 물개처럼, 지난번에 만난 할아버지는 해파리처럼 저마다의 ‘물 속’을 즐긴다. 수영을 마치고 샤워실로 돌아오니 목욕탕 안에도 사람들이 가득하다.
2025년 2월 19일 오후 12시
月火水木金土日
사진에 관한 생각 II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진이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그 창작 과정이 ‘현재’에서 일어나기 때문이다.
지나간 장면들은 시간의 숙성을 통해서 더욱 명확하게 받아들여지는 아쉬움이 내재되어있다 하더라도, 사진 ‘촬영'이 가능한 대상과 시기는 언제나 지금 여기 이 곳 현재 ‘당장'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끊임없이 흐르고 움직이는 강물과 같은 현실에 뛰어들어야만 실질적인 사진촬영 즉 ‘작업’이 가능하다.
몸을 내 던져 맡기는 것이다. 광활한 우주 속에서 하나의 ‘당장’을 물질화하는 사진을 통해서 나는 찰나의 사색과 사유를 얻는 풍요로움을 만끽하게 되는 것이 아닐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진이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그 창작 과정이 ‘현재’에서 일어나기 때문이다.
지나간 장면들은 시간의 숙성을 통해서 더욱 명확하게 받아들여지는 아쉬움이 내재되어있다 하더라도, 사진 ‘촬영'이 가능한 대상과 시기는 언제나 지금 여기 이 곳 현재 ‘당장'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끊임없이 흐르고 움직이는 강물과 같은 현실에 뛰어들어야만 실질적인 사진촬영 즉 ‘작업’이 가능하다.
몸을 내 던져 맡기는 것이다. 광활한 우주 속에서 하나의 ‘당장’을 물질화하는 사진을 통해서 나는 찰나의 사색과 사유를 얻는 풍요로움을 만끽하게 되는 것이 아닐까.
2025년 1월 30일 오전 1시
月火水木金土日
사진에 관한 생각 I
문득 그런 모습이 떠오른다. ‘시선을 어깨 너머 뒤로 향하게 하고 뒤통수 방향으로 걷는 모습’.
우스꽝스러운 모습 같아 보이기도 하지만, 과연 인간은 현재를 온전하게 인지하고 응시하며 걸어갈 수 있는 것일까.
이미지는 보여지는 순간마다 과거를 현재로 소환한다. 즉 지나감으로써 비로소 명확해진 장면과 상황들을 우리는 당장에 눈을 통해 보게 된다. 이는 꽤 마법 같은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씁쓸함도 동반한다.
왜냐하면 그곳에는 우리가 미처 주워담지 못한 것들이 매듭지어지지 못하고 질서 정연치 못하게 널브러져 있기 때문이다.
문득 그런 모습이 떠오른다. ‘시선을 어깨 너머 뒤로 향하게 하고 뒤통수 방향으로 걷는 모습’.
우스꽝스러운 모습 같아 보이기도 하지만, 과연 인간은 현재를 온전하게 인지하고 응시하며 걸어갈 수 있는 것일까.
이미지는 보여지는 순간마다 과거를 현재로 소환한다. 즉 지나감으로써 비로소 명확해진 장면과 상황들을 우리는 당장에 눈을 통해 보게 된다. 이는 꽤 마법 같은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씁쓸함도 동반한다.
왜냐하면 그곳에는 우리가 미처 주워담지 못한 것들이 매듭지어지지 못하고 질서 정연치 못하게 널브러져 있기 때문이다.